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2983호 2016.02.28. 18면 

[복음생각]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다 / 염철호 신부

사순 제3주일(루카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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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 독서와 복음 말씀을 듣고 있자면 조금 섬뜩한 느낌이 듭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종말 때 심판받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투덜대며 계속 악을 탐하는 이에게는 반드시 슬픈 종말이 올 것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일깨우는데 마치 우리에게 하는 말씀 같아 부담스럽습니다. 우리 모습이 광야에서 불평불만에 가득 차 하느님께 대들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우리를 향해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이미 스스로가 죄인임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미 심판받았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미 세례를 통해 구원되었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기만 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오로가 말하듯이(로마 7,7-25) 죄악은 여전히 우리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여전히 회개의 시간과 시기가 필요합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사순시기는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물론,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화답송이 노래하듯이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다”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화답송은 주님이 자비로우심을 기뻐하는 이의 노래이고 오늘 1 독서는 그런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오늘 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불꽃 모양으로 모세를 찾아오십니다. 여기서 떨기나무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서네’입니다. ‘시나이’라는 말도 이 단어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지는데, 신명 33,16에서는 이를 ‘덤불’이라고 번역하며, 주님을 직접 ‘서네’, 곧 ‘덤불 속에 사시는 분’이라고 표현합니다.

‘서네’는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로 작은 잎이 무성하며, 가지가 매우 얇은 식물인데, 불꽃만 닿아도 금방 타 버릴 것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꼭 이집트의 폭압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다 탈출한 뒤 광야를 떠돌던 나약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서네, 곧 덤불 속에 사시는 주님은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분, 광야에 사시면서 불모지에서 약한 존재들 사이에 머무시는 분이십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서네가 불에 금방 타버리는 덤불로 된 식물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불꽃 모양으로 나타나셨는데도 그 식물을 태워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 모습은 이스라엘이 불에 탈만한 존재들이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을 태워 없애버리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주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고 여기곤 했습니다. 스스로 덤불처럼 산다고 생각하면서 하느님을 원망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느님은 직접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당신은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보고, 들으시며, 알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밝히십니다.

그 하느님 이름은 바로 “야훼”, 곧 “있는 나”이십니다. 계시지 않는 어떤 분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에게 다가와서 “나다”라고 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나다”라고만 말하면 누구나 그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분이십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주님께서는 언제나 떨기나무를 태워버리지 않는 불꽃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말씀을 듣고, 보고, 알고 계심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주님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분의 자비하심에 기뻐합시다. 그렇게 매일을 그분과 함께 살아갑시다. 이것만이 우리가 종말을 잘 깨어 준비하는 길이며, 사순시기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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